이탈리아가 다시 에너지 비용과 에너지 가격 부담을 성장 변수의 전면에 올려놓았다. 최근 수년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 불안이 이어지며 유럽 전역의 에너지 위기가 경제 체력에 흔적을 남긴 가운데, 로마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 탓에 충격에 더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가계 전기요금과 산업용 전력 비용의 격차, 제조업 원가 압박, 물류비와 서비스 가격 전반으로 번지는 2차 효과가 동시에 관찰된다. 이런 환경에서 상승한 에너지 관련 비용이 인플레이션 경로를 자극하고, 그 결과 경제 전반의 체감 경기가 약해지며 성장 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충격 완화와 체질 개선을 동시에 겨냥해 재생에너지 확대, 수소·ESS 투자, 전력시장 개혁까지 패키지로 밀어붙이고 있다. 관건은 “비용 압박을 줄이면서도 전환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느냐”다. 이 질문의 답이 향후 시장 영향을 가를 전망이다.
에너지 비용 상승이 이탈리아 성장 전망 하향 조정으로 이어진 배경
성장률 전망이 낮아지는 직접 요인으로는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꼽힌다. 이탈리아는 전력과 가스 비용이 기업의 생산비를 빠르게 밀어올리는 구조여서, 국제 에너지 시장의 충격이 내수와 수출에 동시에 부담을 준다.
이미 이탈리아의 성장 흐름은 둔화 조짐을 보여왔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한 차례 전망을 수정해 당해와 이듬해 성장률을 각각 0.7%로 제시한 바 있으며, 이는 정부의 공식 전망치(해당 연도 1.0%, 다음 해 1.2%)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정리됐다. 에너지 관련 비용의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면서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 회복 속도를 늦춘다는 판단이 반영된 셈이다.
현장에서는 제조업과 운송, 숙박·외식처럼 전력·연료 비중이 큰 업종에서 비용 압박이 먼저 나타나고, 이 부담이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며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경로가 거론된다. 결국 “에너지 쇼크가 물가를 흔들고, 물가가 성장 기대를 갉아먹는” 고리가 형성되며 성장 전망의 하향 조정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PNRR 투자로 비용 충격을 줄이려는 이탈리아 전략
이탈리아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아래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국가 종합 에너지·기후 계획(PNIEC)에는 2030년까지 태양광 80GW, 풍력 28GW로 설비를 늘리고, 전력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 38.1%에서 2030년 65%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방향이 담겼다.
전원 믹스의 ‘물량’ 목표도 구체적이다. 계획상 태양광 발전량은 2020년 24.9TWh에서 2030년 99.1TWh로, 풍력은 2020년 19.8TWh에서 2030년 64.1TWh로 늘어나는 경로가 제시됐다. 비용 측면에서는 “비싼 수입 에너지 의존도를 낮춰 국내 전력 비용 변동성을 줄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정책 수단은 보조금과 인허가 개선이 동시에 움직인다. 이탈리아는 2023년 말부터 대규모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를 위한 투자지원 제도를 시행했고, 향후 3년간 약 97억 유로를 투입해 총 17.65GW 규모의 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 발전 설비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가회복계획(PNRR) 자금을 활용한 행정 간소화도 병행되며 지연됐던 프로젝트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설치 흐름은 태양광이 대표적이다. 2024년에는 신규 태양광 6.8GW가 추가되며 누적 37.1GW에 도달했고, 2022년 2.48GW, 2023년 5.23GW로 이어진 증가세가 확인됐다. 다만 주택 부문 세제 혜택 종료 이후에는 소규모 분산형보다 유틸리티급 대형 프로젝트 비중이 커지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업계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수소와 ESS 전력시장 개혁이 에너지 위기 이후 시장 영향의 핵심 변수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수록 전력망 안정성과 저장 능력은 곧바로 경쟁력이 된다. 이탈리아가 ESS(에너지저장장치) 확대에 힘을 싣는 이유다. 정부는 2030년까지 ESS 용량을 15GW(50GWh)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고, 2025년 4월 기준 그리드 규모 배터리 저장설비는 약 6.1GW로 집계됐다.
정책은 시장 설계를 바꾸는 방식으로도 진행된다. 이탈리아는 전력시장 급전·보조서비스 시간 단위를 1시간에서 15분으로 세분화하는 TIDE(Time Interval Day-ahead Energy) 개혁을 추진해 ESS가 변동성 대응 자원으로 더 유연하게 참여하도록 길을 열고 있다. 장기 계약 기반의 MACSE(장기 용량지원 성격)도 금융 조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로 언급된다. 비용 충격의 시대에 “저장과 유연성이 전기료를 안정시키는가”라는 질문이 제도 설계로 이어지는 셈이다.
수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전개된다. 이탈리아는 2024년 말 발표된 국가 수소 전략을 토대로, 단기간 생산량 경쟁보다 수요처 중심의 실증과 밸류체인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국영 가스회사 SNAM이 기존 천연가스 배관망 약 2700km를 단계적으로 수소 전용으로 전환하는 ‘이탈리아 수소 백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북아프리카-유럽을 잇는 지중해 수소 회랑 구상과도 맞물린다.
다만 그린수소의 경제성은 결국 전기료와 직결된다. 유럽 평균 대비 높은 전기요금이 원가 부담으로 지적되면서, 전력시장 구조 개편과 EU 차원의 유럽 수소은행 활용이 거론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결국 에너지 비용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요인을 낮추지 못하면, 전환 투자가 오히려 새로운 부담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 정책 당국이 넘어야 할 문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