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파생상품을 전면에 내세운 전문 거래소들이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현물 매매 중심의 기존 플랫폼과 주요 플랫폼이 거래 부진과 규제 변수에 흔들리는 사이,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주식·ETF·원자재 연계 상품이 투자자 수요를 흡수하면서 영향력 확대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으로 손익을 정산하는 가격추종형 계약이 확산되며, ‘코인 거래소’라는 정체성을 넘어 전통자산 영역까지 포괄하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상품 라인업 경쟁을 넘어 금융시장의 거래 시간과 접근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건드린다. 미국 주식 실적 발표나 지정학 이슈가 정규장 밖에서 터질 때, 전통 시장은 멈추지만 디지털자산 기반 파생상품 거래는 즉각 반응한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 환경 탓에 관련 서비스가 사실상 막혀 있어, 투자금이 해외로 이동하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거래소들이 ‘수수료’보다 ‘합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자산의 폭’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면서, 시장의 무게중심이 재편되는 분위기다.
주식 ETF 원자재 연계 파생상품이 거래소 영향력 확대를 이끈다
매일경제 보도를 인용한 신한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는 최근 테슬라·QQQ·EWY를 기초로 한 TradFi 연계 상품 상장을 늘리며 24시간 거래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TSLAUSDT.P, QQQUSDT.P, EWYUSDT.P처럼 스테이블코인으로 손익을 정산하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금·은·원유 등 원자재 기반 계약도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디지털자산 플랫폼 안에서 ‘전통자산 익스포저’를 제공하는 흐름이 확산됐다.
투자자들이 이런 상품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거래 시간의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사에서는 4월 17일 미국과 이란의 휴전 소식이 장 마감 뒤 전해졌을 때, 현물 QQQ 거래는 멈췄지만 QQQUSDT.P는 즉각 가격에 반응했다고 전했다. ‘장외 이벤트를 가격에 반영하는 속도’가 투자 행태를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

구조적으로도 레버리지 ETF와 다른 점이 수요를 키웠다. QQQUSDT.P 같은 상품은 일일 리밸런싱에 따른 가치 훼손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 거론되고, 운용보수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이 장기 투자자에게 매력으로 언급됐다. 만기가 없어 롤오버 부담은 줄지만, 현물과의 괴리를 조정하기 위해 펀딩 수수료 체계를 운용하고, 주말·야간처럼 기초자산 시장이 닫힐 때는 EWMA를 활용한 표시가격으로 청산 기준을 관리하는 방식이 쓰인다고 설명됐다.
이런 설계는 시장 변동이 커질수록 ‘속도’와 ‘연속성’을 원하는 수요를 끌어당긴다. 결과적으로 현물 중심의 기존 플랫폼보다 파생 중심 사업자가 더 높은 체류시간과 거래 빈도를 확보할 여지가 커졌다는 점이, 최근 영향력 확대의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코인베이스와 크라켄이 규제 기반 파생상품으로 주요 플랫폼 판을 흔든다
한화투자증권은 코인베이스와 크라켄이 규제 기반의 파생상품과 주식 토큰화 인프라를 전면에 내세우며 ‘슈퍼앱’ 경쟁의 선두로 나섰다고 분석했다. 코인베이스는 3월 9일 유럽 금융상품시장지침(MiFID)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을 포함한 유럽 26개국에서 암호화폐 선물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전해졌다. 비트코인·이더리움·솔라나 무기한 선물과 만기형 선물을 제공하고, 일부 계약에는 최대 10배 레버리지가 적용된다.
주목받은 대목은 암호화폐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인베이스는 엔비디아·애플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 기술주와 ETF로 구성된 지수 선물 상품도 함께 내놨고, 수수료는 계약당 최저 0.02%로 제시했다. 전통 브로커리지와 경쟁하는 구도를 명확히 한 셈이며, 주요 플랫폼 간 경계가 흐려지는 장면으로 읽힌다.
크라켄 쪽도 속도를 냈다. 크라켄의 모회사 페이워드는 같은 날 나스닥과 ‘상장 주식을 블록체인과 연결하는 인프라(Equity Transformation Gateway)’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토큰화된 주식은 원본과 1대1로 연동되고, 배당 수령과 의결권 등 기존 주주 권리를 동일하게 보장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크라켄은 자체 토큰화 주식 서비스 xStocks가 출시 1년이 채 안 돼 총 거래량 250억 달러를 넘겼고, 블록체인 위 결제액도 4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서비스 출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승인을 전제로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한다. 전통 거래소 인프라를 상징하는 나스닥이 참여한 만큼, 시장은 ‘규제권 안에서의 확장’이 어디까지 가능해질지 주시하고 있다. 결국 파생상품과 토큰화가 결합한 전략이 시장 점유율을 좌우하는 새로운 잣대로 떠올랐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규제 공백이 전문 거래소로의 이동과 시장 점유율 재편을 부른다
한국은 관련 제도 기반이 좁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국내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상 가상자산을 기초자산 정의에 포함하지 않아, 디지털자산 선물 제공이 사실상 차단돼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이 주 5일 24시간 거래 체제 도입을 추진하고,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도 거래 시간 확대를 모색하고 있지만, 해외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24시간 파생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이 틈에서 국내 투자자들의 이동이 통계로도 포착됐다. 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해외 사업자와 개인지갑으로 빠져나간 가상자산은 90조원으로, 직전 반기 대비 14%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파생상품 거래 수요가 해외로 흡수되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단순 자금 유출을 넘어 국내 디지털금융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제도 논의는 투자자 보호와도 맞물린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조건으로는 규제 당국의 명확한 법적 프레임, 스마트컨트랙트 감사와 수탁 구조의 투명성, 그리고 기존 증권사 수준의 보호장치가 거론됐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금융투자사 허위·과장 광고를 막기 위한 광고제도 개선 태스크포스를 출범하고, ETF 시장 과열 국면에서 ‘예금처럼 안전’하거나 ‘수익 보장’처럼 오인될 수 있는 문구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 3분기 중 개선책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통 금융권에서 강화되는 소비자 보호 기조가, 디지털자산 영역의 제도화 논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관건은 ‘어디에서, 어떤 규칙으로, 어떤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느냐’로 모인다. 국내 제도 정비가 지연될수록 전문 거래소들이 제공하는 24시간 TradFi 연계 파생상품이 대안으로 자리 잡으며, 기존 플랫폼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