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들어 미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가격’보다 ‘규칙’이 먼저 움직였다. CoinGlass가 집계하는 공포탐욕지수가 11까지 떨어지며 극단적 공포가 시장 심리를 짓눌렀지만, 규제 당국은 오히려 전례 없는 속도로 제도 정비에 나섰다. SEC와 CFTC가 공동으로 토큰 분류 틀을 내놓고, Kraken Financial이 연준 마스터 계좌를 얻어 결제 인프라의 문턱을 넘는 동안, 노동부는 401(k)에 디지털 자산 편입을 허용하는 규정안을 제시했다. 동시에 KuCoin에 대한 대규모 제재가 확정되면서 “명확성”과 “집행”이 함께 강화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이 변화는 글로벌 거래소들의 서비스 조정을 촉발한다. 단순히 미국 이용자 차단이나 상장 코인 정리 수준이 아니라, 토큰의 법적 성격에 맞춘 상품 설계, 달러 정산 경로 재편, 연금·기관 자금 유입을 대비한 내부 통제 강화가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미국계 거래소의 컴플라이언스 실무자 ‘지민’(가명)은 “과거엔 규제 리스크를 피하려고 기능을 줄였다면, 지금은 새 기준에 맞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재설계하는 국면”이라고 말한다. 공포 국면에서도 룰이 바뀌면 시장의 다음 국면 역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달의 움직임은 업계 전반에 실질적 파급력을 남기고 있다.
SEC CFTC 공동 지침이 만든 토큰 분류 변화와 거래소 상장 전략
미국에서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3월 17일 공개된 SEC·CFTC 공동 해석 지침이다. 양 기관은 10년 넘게 이어진 ‘증권인가, 상품인가’ 논쟁에 대해, BTC·ETH를 포함한 16개 주요 토큰을 디지털 상품으로 공식 분류하는 틀을 제시했다. 앞선 3월 11일에는 협력 양해각서(MOU)도 체결돼, 관할권 충돌을 줄일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상장·거래지원의 기준점이 바뀐다. 증권성 논란이 있던 자산이 상품 영역으로 이동하면, 일부 상품은 파생상품 규정과 맞물린 설계가 요구되고, 현물·파생의 경계에서 내부 통제가 한층 정교해진다. 시장 참여자들이 ‘상장 폐지’보다 ‘분류에 맞춘 공시와 위험고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흐름은 미국 규제 재정비의 큰 방향을 다룬 미국 암호화폐 규제 재검토 흐름에서도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다만 ‘명확성’은 동시에 ‘선 긋기’이기도 하다. 분류 밖에 남는 토큰은 여전히 규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그 부담은 곧 상장 심사 강화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거래소의 선택지는 단순해진다. 분류 체계에 맞춘 상장 유지와 상품 구조 개편, 혹은 미국 노출을 줄이는 전략적 후퇴다. 다음 화두가 ‘결제 인프라’로 옮겨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raken 연준 마스터 계좌와 달러 정산 변화가 서비스 구조를 바꾼다
3월 4일 Kraken Financial은 캔자스시티 연준으로부터 제한적 목적 마스터 계좌를 승인받았다. 핵심은 Fedwire를 통한 달러 결제망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기업이 중앙은행 결제 인프라에 연결된 첫 사례로, 그 자체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변화는 이용자 경험보다 먼저 ‘운영 비용’과 ‘리스크 모델’에 영향을 준다. 과거에는 거래소가 달러 입출금을 처리하려면 중개은행을 거쳐야 했고, 수수료·지연뿐 아니라 은행의 일방적 서비스 중단 위험도 뒤따랐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때 일부 업계가 결제 경로를 잃었던 경험은, 인프라 의존 리스크가 실제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직접 접근은 이런 구조적 취약점을 줄이는 방향이다.
다만 ‘은행이 됐다’는 뜻은 아니다. 승인에는 1년 기한, 지급준비금 이자(IORB) 미수령, 할인창구 접근 제한 등 조건이 붙는다. 그럼에도 경쟁 구도는 달라진다. 달러 정산 속도와 안정성이 기관 고객 유치의 핵심 지표가 되면서, 다른 대형 거래소들도 파트너 은행 다변화, 준비금 관리, 내부 리스크 위원회 강화 같은 서비스 조정을 병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결국 인프라로 들어간 사업자가 표준을 만들고, 표준이 다시 업계의 운영 방식을 재편하는 순환이 시작된 셈이다.
이 대목에서 시장은 자연스럽게 ‘제도권 자금의 다음 경로’를 묻는다. 그 답이 401(k) 규정 제안과 맞닿아 있다.
401k 개방과 CLARITY Act 논의 속 강화되는 집행이 업계에 던진 신호
3월 30일 미국 노동부는 401(k) 퇴직연금에서 비트코인 등 디지털자산을 편입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안을 제안하고, 60일 의견 수렴 절차를 시작했다. 규모는 401(k)만 13.9조 달러로 거대하다. 단 1% 배분만 가정해도 1,390억 달러라는 숫자가 나오며, 이는 현물 비트코인 ETF의 누적 흐름과 비교될 정도로 시장 구조를 바꿀 잠재력이 있다.
흥미로운 건, 제도 논의가 진전된 같은 달에 ETF 자금 유입은 둔화했다는 점이다. Fensory 집계로 3월 비트코인 ETF 순유입은 8억9,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크게 줄었다. 단기 심리는 얼어붙었지만, 규칙은 오히려 확장되는 역설이 만들어진 셈이다. 시장 시가총액의 변화 흐름을 다룬 암호화폐 시장 시가총액 감소 같은 지표가 주목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입법 측면에서는 CLARITY Act 논의가 이어지며, 스테이블코인 수익률 처리 같은 핵심 쟁점에서 초당적 접점이 형성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처럼 제도권의 문이 열리는 동안, 단속은 더 날카로워졌다. 3월 31일 CFTC는 KuCoin 운영사에 대한 동의 명령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의 영구 퇴출을 확정했고, 총 벌금·몰수 규모는 2억9,7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주 법무장관이 예측시장 플랫폼 Kalshi를 불법 도박 혐의로 제소하는 등, 연방과 주 단위 집행이 동시에 움직인 것도 같은 흐름이다.
결국 메시지는 명확하다. 강화되는 규제 환경에서 살아남는 조건은 ‘성장’이 아니라 ‘정렬’이다. 블록체인 기반 금융거래가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문이 넓어지는 만큼, 거래소들은 상품 구성부터 고객 확인, 상장 심사, 달러 결제, 스테이블코인 취급까지 전 영역의 운영 기준을 다시 맞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승부를 가르는 변수는 기술보다 컴플라이언스의 속도라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