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⑲미신과 현실 사이, 꼬이는 뇌 속 회로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⑲미신과 현실 사이, 꼬이는 뇌 속 회로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9.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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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언어습관인가, 무의식의 발로인가>

세월호 사건 1년 뒤인 2015년 어느 날. 유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세월호 인양이 늦어지자 시신을 혹시라도 찾지 못할까 싶어 유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바닷속은 얼마나 추울까? 제발 빨리 인양해 주세요”

사망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유족들은 추운 바다 밑에서 떨고 있을 자식을 생각하니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2019년 11월, 독도에 소방헬기가 추락했다. 20대 후반의 여자 소방대원의 시신을 뒤늦게 찾아 유가족 품에 인계하는 날이다. 유가족들은 딸의 시신을 보면서 “차디찬 바다에서 얼마나 추웠니?”라고 울부짖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듯 바다 밑이 얼마나 추웠냐고 묻는다.

위 두 사례에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유가족들에겐 육신이 죽더라도 끝이 아니다. 사후생을 전제로 하는 가슴앓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면 망자가 춥거나 더울 일이 없지 않겠는가. 영원한 종말이기 때문이다. 애끓는 마음이 커서 산사람처럼 사후생의 감정이입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죽으면 끝이라는 믿음을 확고히 가진 사람도 자식 잃어 애끊는 아픔을 겪는 당사자가 되어보면 위 부모들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대 이국종 교수는 중증 외상 분야의 국가대표급 외과 전문의다. 2011년 아덴만 작전의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다. 2017년에는 판문점 귀순 시 피격된 북한군 오청성을 살려내는 치료를 했다. 국민적 존중을 한몸에 받았던 ‘국민 의사’다. 그런 이국종 교수가 병원 측과의 갈등을 빚어 마음 앓이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2020년 1월 하순쯤 언론을 통해 “경기 남부권역 외상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죽어도 한국에서 다시 외상센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러면서 “그냥 교수의 삶을 살겠다. 이번 생은 완전히 망했다”(젊은 층에선 ‘이생망’으로 표현한다)라며 허탈한 심경을 밝혔다.

기자회견 하는 이국종 교수
기자회견 하는 이국종 교수

외상 외과 전문의로서 물질 중심 의료교육을 받아왔던 이 교수 입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말이 나온 것은 뜻밖이었다. 별다른 뜻 없이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당신이랑 나랑 전생에 무슨 인연이….’식의 강조 어법처럼 언어습관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진심이 포함된 현재 의식이나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발언일 수도 있다. 정확한 의중은 알 수 없지만, 과학자의 입에서 나온 ‘이번 생’이라는 표현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서 관심이 갔다. 이 말속에는 과학자나 의사들이 부정하는 전생과 내생(사후생)을 내포하고 있어서 그랬다.

<입에만 붙어있는 ‘전생’인가?>

우리는 일상적으로 전생과 관련되거나,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환생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는 경향이 있다. 관계가 안 좋은 인연은 전생에 원수, 밀접한 관계는 전생에 부부, 운 좋은 사람에겐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것이라는 등등 전생을 끄집어낸다.

‘다시 태어나도 그대만을 사랑하겠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배우자를 선택하겠느냐?’ 는 물음도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종종 나온다. 다시는 안 하고 싶다거나, 새로운 사람과도 한번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심경을 밝히는 출연자도 많다.

말속에는 정서와 문화가 녹아 있는데, 언어습관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전생과 환생을 언급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생과 환생의 존재에 대해 당연하게 인정하거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배고파 죽겠다. 심심해 죽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 단순한 언어습관일 수도 있다. 언어습관으로 언급하는데 만족하거나, 심심풀이용으로 전생과 환생을 알아보는 것으로는 현생 삶의 개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전생과 후생의 존재와 의미를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수용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패러다임, 신념체계, 가치체계 등등 고유의 인식 틀을 갖고 있다. 같은 자극을 받고 같은 장면을 경험했음에도 수용 자세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각자의 패러다임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전생, 후생, 윤회 등에 대한 인식의 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현생 삶의 의미나 방향성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앞에서 ‘죽으면 끝’이라는 인식은 공자의 한마디 가르침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잘못된 사생관이라고 이해했다. 신과 영혼, 전생 등등의 초현실적 세계는 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말해왔다. 과학은 물질 세상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신과 영혼 등의 비물질 영역의 문제는 과학적 조사방법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해 왔다

< ‘흰 까마귀’ 한 마리면 충분하다>

‘흰 까마귀론’은 유명한 논증 방법의 하나다. 특정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완벽하고도 확실한 증거자료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의미다. 나중에 소상히 설명하겠지만 여기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 ‘세상의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지구상 모든 까마귀를 조사할 필요가 없다. ‘흰 까마귀 한 마리면 충분하다’>라는 내용이다.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윌리엄 제임스의 유명한 ‘흰 까마귀론’이다.

흰까마귀는 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나타난다. YTN 2012.7.21.뉴스 캡처
흰까마귀는 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나타난다. YTN 2012.7.21.뉴스 캡처

마찬가지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므로 신, 영혼, 전생, 사후세계, 환생은 있을 수 없다’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선 비물질 세상 모두를 조사할 필요는 없다. 완벽하고도 확실한 단 하나의 증거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박 가능한 증거는 하나가 아니라 곳곳에 있다.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한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흰 까마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까마귀들이 나타난 것이다. 죽으면 끝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뒷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쉽게 흰 까마귀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끝, 즉 완전소멸이므로 죽은 뒤에는 귀신도 없어야 한다.

늦은 밤 공동묘지 가는 것을 귀신 나올까 봐 무서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TV나 드라마, 영화, 서적 등에서의 귀신, 영혼 묘사는 흔해 빠져 식상할 정도다.

다수의 유명 연예인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귀신 목격담을 자주 얘기한다.

잘 나가던 유명 연예인이 신병을 어쩌지 못해 내림굿을 통해 무속인이 된 사례들도 많다.

최면요법을 하는 곳도 많아졌고, 그 후 자신의 전생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그러다 보니 믿지 않는 사람도 머릿속으로는 ‘귀신은 없다’라는 자기암시를 주면서도 한쪽으로는 귀신도 있을 수 있다는 샛길을 열어 놓는다.

<미신과 현실 사이, 꼬이는 뇌 속 회로>

과학의 발달로 귀신이나 영혼,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도 위와 같이 귀신과 영혼을 전제로 하는 사례들이 속출하니까 귀신과 영혼에 대한 인식이 뒤죽박죽이다. 이런 현상들은 미신이라고 배웠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체질화된 이성은 미신을 부정한다. 하지만 눈앞에 드러나는 증거나 사례들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다. 그러니 뇌 속 회로가 꼬이면서 혼란스러운 것이다.

30년 전 미국의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는 귀신을 무섭게 묘사하지도 않았고, 영매를 매우 코믹하게 그려냈다. 2005년에는 미국의 드라마 고스트 위스퍼러 (Ghost Whisperer)가 CBS-TV에서 5년 가까이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도 방송되었다. 이승을 못 떠나고 있는 영혼들의 한을 풀어줘 사후세계로 보내주는 내용을 그렸다. 영혼이 뒤바뀌어 벌어지는 해프닝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도 많이 등장했다.

영화 ‘고스트 위스퍼러’의 여주인공 ‘제이퍼 러브 휴이트’
영화 ‘고스트 위스퍼러’의 여주인공 ‘제이퍼 러브 휴이트’

예전보다 귀신이나 영혼에 관한 사례나 묘사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이나 영혼, 그런 것은 망상이고 허구라는 과학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신과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존재한다고 믿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이지만, 만약 신이나 영혼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구석으로 밀쳐 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가 떠안게 된다.

기독교, 불교를 포함해 종교적 신심이 두터운 신도들은 성령과 사탄, 귀신이나 영혼, 사후세계를 믿는다. 과학 저편에 있는 초월적 세상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수천 년 된 대중종교들은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중종교들이 살아남아 인류의 영성적 기반마련과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다면, 그 자체로써 ‘흰 까마귀’로 기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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