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⑱과학자로선 안 믿지만, 인간으로선 믿고 싶다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⑱과학자로선 안 믿지만, 인간으로선 믿고 싶다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9.09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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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고도로 훈련된 과학자, 초과학적 체험 뒤 무너지다>

케이건 교수는 인간의 실체에 대해 물리주의 태도를 보이면서 ‘인간은 영혼이 없는 물질이지만, 단순한 물질이 아닌 좀 더 복잡한 기계’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모든 심적 현상은 물적(신체적) 현상으로 환원 가능하다는 태도가 물리주의다.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 활동도 모두 물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를 보이면 초심리학에서 말하는 ESP 현상은 당연히 믿지 않는다. ESP는 초감각적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으로써 오감 등 물리적 감각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지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오감이 아닌, 텔레파시, 예지, 염력 현상 등을 통해 정보가 획득된다.

제공: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엘리자베스 로이드 마이어’ 교수는 세계적인 심리분석가이자 임상의였다. 버클리대학교와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메디컬 센터에서 심리학을 가르쳤다. 전국 강연도 많이 다녔으며 미국 심리분석학회에서 심리분석학자들을 훈련하고 감독하는 일도 맡는 등 유명한 과학자였다. 그러던 그녀가 1991년 분실한 하프를 되찾는 과정에서 ESP를 직접 경험했다. 마이어 박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왜 여자의 육감은 잘 맞는 걸까’라는 저서를 집필했다. 다음은 위 저서에 소개한 본인의 경험담이다.1)

1991년 마이어 박사의 딸이 귀중한 하프를 크리스마스 공연 후 공연장에서 도둑맞았다. 두 달 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이때 친한 친구가 조언했다. 다우징 전문가에게 전화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다. 다우징이라면 금속 막대를 들고 수맥을 찾는 괴짜 같은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절박한 마음에 전문가를 찾았다.

아칸소주에 거주하는 ‘해롤드 맥코이’라는 다우징 전문가와 전화 연결이 됐다. 하프를 도둑맞은 장소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였다. 며칠 뒤 ‘해롤드 맥코이’는 하프가 보관되어 있는 주소를 전화로 알려줬다. 마이어 박사가 경찰의 협조를 요청하니 그런 정보로 수색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주소지 인근에 ‘하프 찾아주면 사례하겠다’라는 전단지를 붙였다. 며칠 뒤 ‘전단지와 같은 하프를 옆집 사람이 자신에게 보여 줬다’라는 어떤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그 후 하프를 되찾았다는 내용이다.

전화상으로 3,000km나 떨어져 있는 다우징 전문가가 그 넓은 샌프란시스코만의 대도시에서 분실한 하프의 위치를 어떻게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었는지 마이어 박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회의주의자, 고도로 훈련된 과학자로 자부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본인이 ESP 현상을 직접 겪은 뒤 몇 달 동안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중대한 변화가 왔다고 했다.

<초과학적 체험을 한 과학자들의 말 못하는 가슴앓이>

‘마음과 물질 간 기이한 현상’을 연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어느 날 의사 모임에서 일면식도 없던 의사 한 사람으로부터 이상한 고백을 듣는다.

“20년 전 치명적인 뼈암을 선고받고 크게 낙담했다. 마라톤을 좋아해서 달리는 도중에 갑자기 빛이 뼈로 들어와 골수를 채우는 느낌을 받았고, 그 후 암에서 완치됐다. 그 일에 대해 아내 이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치료했는지 나는 안다.”

이외에도 마이어 박사가 연구를 시작했다는 말이 퍼지자 의료 분야와 정신 분석 동료들이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나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담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빛이 암세포를 치료했다는 그 의사처럼 다른 동료 의사들에게는 절대로 털어놓지 못할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가령, “내 환자가 걸어오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냥 알게 되었다”

“한밤중에 총소리를 들은 것 같아 잠이 깼는데, 바로 그 순간이 내 환자가 총을 들고 자살하려고 했다는 것을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등등

마이어 박사는 왜 나의 동료들이 아주 기이한 개인적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지 못해 안달하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신뢰받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서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경험들을 했었다. 그런 경험담으로 남들과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기를 그들이 얼마나 절실히 원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마이어 박사가 실토한 것처럼 의사든, 심리분석가든 많은 사람은 ESP 현상을 경험하고도 끙끙 앓는다. 동료나 주위 사람들부터 자신의 얘기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조직 내에서 받는 불이익도 엄청나게 클 것이다. 그래서 말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ESP뿐만 아니라 수십 년 전 임사체험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면 처음에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뒤에 언급할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도 의사로서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무장된 사람이었다. 와이스박사는 1988년 임상경험을 담은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는 책을 출간했는데, 원고 집필을 끝낸후에도 4년 동안 망설였다고 한다. 과학계나 의료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선명하게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 출판을 하자 박사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도 비난이 두려워 주저주저했던 미국의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 심리학자들, 환자들로부터 각자의 경험을 담은 사연들이 물밀 듯 쇄도했다는 것이다.

<과학자로선 안 믿지만, 인간으로선 믿고 싶다>

마이어 박사는 연구 도중 또 다른 경험을 한다. 박사의 남동생이 지구 반대편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꿈을 꿨는데, 실제로 동생이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길을 건너다가 자동차 사고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런던에 있어야 할 동생이 인도에서 자동차에 부딪히는 꿈을 런던에서 꿨던 것이다. 마이어 박사는 자신의 과거 인지체계를 벗어나는 신기한 경험을 연속으로 한다.

마이어 박사의 저서에 추천사를 쓴 사람은 뉴저지주 프린스턴 첨단과학연구소 ‘프리먼 다이슨’이라는 과학자다. 그는 “과학자이기에 ESP 얘기를 들으면 참으로 불편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과학자로서의 나는 이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믿고 싶다”라고 썼다. 그는 이어 “내가 보기에 그녀는 ESP에 관한 한 회의론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녀가 하프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으며, 또한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마이어 박사의 경험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추천사를 쓴 이 과학자는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로서는 안 믿지만, 인간으로서는 믿고 싶다’라는 말을 하니까 말이다. 과학자라는 직업이, 그동안의 고정관념이 새로운 사실을 수용하는데 발목을 잡는다는 자기 고백처럼 들려서이다.

중세 유럽 시절, 기독교 가르침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을 때 과학이 진실을 말하면 신성모독으로 박해를 받았다. 그렇게 핍박받은 경험을 가진(?) 오늘날의 과학도 ESP 등 초현실적인 분야를 대할 때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그 당시의 종교가 자신들의 무지를 신성으로 대체하려 했다면, 오늘날 과학은 자신들의 무지를 미신으로 낙인찍으려 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다. 백 번 듣는 것은 한 번 보는 것만도 못하다. 아무리 과학자라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는 초과학적, 초현실적 경험을 직접 겪게 되면 인식체계에 큰 변화를 겪는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마저 스스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명백하게 아는 것을 스스로 속인다면 겪어야 할 내적 갈등과 혼란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될 것이다.


1) 엘리자베스 로이드 마이어(저), 왜 여자의 육감은 잘 맞는 걸까, 이병렬(역),

    21세기북스. 2009. 1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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