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⑰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죽음’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⑰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죽음’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9.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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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셀리 케이건 교수: 영혼을 전제로 한 죽음관은 허구다>

셀리 케이건(Shelly Kagan) 예일대 교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DEATH)’ 주제로 예일대학교에서 강의해오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17년 연속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하버드대 ‘정의’(Justice) 및 ‘행복’(Happiness)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셀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 유튜브 캡처강의할 때 항상 책상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별명이 책상 교수다.
셀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 유튜브 캡처강의할 때 항상 책상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별명이 책상 교수다.

케이건 교수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불린다. 그런 케이건 교수가 자신의 강의 내용을 엮은 동명의 저서를 2012년도에 발간했다. 케이건 교수는 강의나 저서를 통해 ‘영혼은 없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죽음의 본질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가 대부분 허구다. 영혼이라는 것은 없다. 영생(永生)이란 것도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자살도 특정 상황에서는 이성적,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다”라는 태도를 보인다.

케이건 교수는 “자살도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다”라며 열린 태도를 취한다. 여기서는 케이건 교수의 죽음관만 살펴보고 자살에 대해선 뒷장에서 소상히 설명하겠다. 자살은 ‘어떤 경우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며 왜 해서는 안되는지’에 대해 근거와 함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서울시장, 국회의원을 지낸 고위 정치인이든 최진실, 조민기, 샤이니 종현, 구하라 등 인기 연예인이든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살을 빈번하게 감행한다. 모방자살까지 겹쳐 우리나라는 십수년간 OECD 국가내에서 자살률이 최고로 높다는 것만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케이건 교수의 ‘특정 상황 자살 허용론’ 주장이 행여라도 한국의 자살률 증가의 조그만 원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케이건 교수는 “사람들은 죽음의 본질에 대해 영혼을 전제로 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집필의 목적이라고 밝힌다.1) 그는 죽음에 대한 종교적 해석을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 것이라는 전제를 단다.

그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인간의 실체에 관해서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고, 두 번째 관점은 인간이 ‘육체’로만 이뤄져 있다는 ‘물리주의’(物理主義, physicalism)다.2) 그는 후자인 물리주의 태도를 보인다. 물리주의는 심적 현상은 물적(신체적) 현상으로 환원 가능하다는 태도다.

<케이건 교수의 죽음관, 플라톤 철학의 각주 하나를 달고 있는 것인가>

“인간은 오직 물질이며 단순한 물질이 아닌 좀 더 복잡한 기계다. 인간은 오직 육체로만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소멸하는 육체 기계다. 영생도 증명되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에게는 오히려 해악이다. 따라서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원론은 허구다”라는 것이 케이건 교수의 결론이다.

인간의 기계 뇌. 출처: Hippopx
인간의 기계 뇌. 출처: Hippopx

그는 과학자가 아닌 철학가, 사상가임에도 과학자들처럼 물질 중심주의자, 과학 환원주의자의 태도를 보인다. 그는 자신만의 논증을 통해 플라톤의 영혼 불멸론을 부정한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지난 2천 년간의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플라톤의 위대함을 한 줄로 요약했다. 이에 따르면 셀리 케이건 교수 역시 플라톤 철학에 대해 각주 하나를 달고 있는 셈이다.

케이건 교수는 영혼을 인정하는 영혼주의자들의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주장을 나열한다. 그는 “영혼의 존재를 오감으로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추론방식을 택한다. 여러 주장 중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최선의 설명으로써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3) 이라고 말한다.

케이건 교수는 “영혼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 이원론자의 주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영혼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도 자유의지를 설명할 수 있으며, 영혼을 배제하고도 자유의지가 설명된다면 영혼은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4) 그는 그렇게 이원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무엇에 대한 전제를 설정한 뒤 그 전제에 따른 논리 전개 및 결론 도출방식이 논리적 방식이긴 하다. 하지만 그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면, 그 이후 과정 모두가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는 “영혼은 오감으로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다. 영혼은 존재 자체가 인간의 오감 영역으로 포섭되지 않는 존재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감 너머 육감, 영감이 있는 것이다.

<사과를 먹어 본 사람과 말로 설명 들은 사람의 차이>

육감, 직감, 영감 등은 영혼 활동의 일부분이고 그와 같이 영혼의 실체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많다. 케이건 교수처럼 자유의지를 상정하지 않고 영혼의 존재를 직접 체험하고 다반사로 실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찌 되는가? 영혼마저 논증하려 드는 사람은 영혼의 직접 당사자나 체험자처럼 경험할 수가 없어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체험자들은 분명히, 생생하게 현실처럼 영혼의 존재를 스스로 인식하고 체험한다.

사과를 직접 본 경험도 없고, 사과를 먹어본 경험도 없지만 사과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갖고 있는 사람이 사과를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추론해 설명한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사과는 동그랗고, 빨간 것도 녹색의 것도 있다. 달콤한 맛도 있고 약간 신맛이 나는 것도 있다. 가운데를 자르면 다갈색이나 검은색 씨를 품고 있는 어떤 공간이 보인다. 그곳은 마치 성벽밖에 둘러쳐져 있는 해자처럼 타원형으로 생긴 어떤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 몇 알의 씨가 있다.」 라는 식으로 사과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그 사람이 말한 설명대로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연결 지으면서 어떤 물체를 연상하거나 상상해 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상한 것이 사과와 근접한 그 어떤 것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고, 부정확한 논리 타령인가?

사과를 본 사람, 사과를 칼로 도려내 쪼개 본 사람. 사과를 먹어본 사람들은 위와 같이 단순한 사과 하나를 두고 이렇게 지루한 말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그 자체가 답답할 것이다. 그들의 논리 타령 자체가 대단히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언어유희로 생각될 것이다.

<영혼은 없다. 인간은 소멸하는 육체 기계다>

케이건 교수는 책을 발간한 뒤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5)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인간은 로봇보다 나은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식의 주장은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으냐”라는 질문에 케이건 교수는 “나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기계라고 생각한다. 기계와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인간은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는 기계이며, 어떤 계기를 통해 자유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라고 답한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케이건 교수는 ‘machine’이란 용어를 쓰면서 인간을 기계에 비유하고 있다. 인간은 결함 없는 기계로 태어나 점점 낡게 되고 부품을 교체하기도 하지만, 결국 고장 나서 어느 날 쓸모없이 되어 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죽음의 요체다. 오디오가 낡아서 고장 나면 못 쓰는 것처럼 인간도 오디오와 같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3년 5월 한국을 방문, 서울대에서 강연하는 자리에서도 “인간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기계에 불과하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6) 라며 영혼이나 내세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했다. 인간을 기계로 보는데 기계속에 무슨 영혼이나 내세가 있을 수 있겠는가? 케이건 교수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죽으면 끝’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영성을 지향하는 세상의 모든 대중종교들은 존립할 수 없고 존립해서도 안된다.

그는 사회사상과 윤리학을 전공한 철학 교수이면서도 많은 과학자처럼 영혼을 부정하며 ‘죽으면 끝’이라는 유물론, 물질만능주의, 과학 환원주의에 깊숙이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셀리 케이건(저). 죽음이란 무엇인가. 박세연(역). 엘도라도. 2012. 10~11p

2) 같은 책 24~41p

3) 이 추론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정할 때 일어나는 다른 현상들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면 그 존재는 실재한다고보는 논증 방식이다.

4) 같은 책 43~45p, 70p, 78p, 86~87p

5) 한현우.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케이건 교수>. 조선일보. 2012.12.1

6) 박희창.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 “죽음이 왜 나쁘냐고? 기회가 사라지니까”>. 동아일보. 20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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