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⑯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차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⑯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차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9.0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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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소크라테스>

고대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신, 영혼의 존재를 믿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 인간은 죽어서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하데스(지하 세계)로 간다고 믿었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한 피타고라스는 수학자 겸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전생(前生)을 모두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전생은 영혼을 전제로 해야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도 “내가 스무 번 살면서 겪었던 삶을 모두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 활동한 사람들이다. 2500년 전부터 그리스 시대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영혼의 존재를 넘어 전생의 여러 삶까지도 기억한다고 강조한다. 전생의 여러 삶이라는 말은 영혼의 윤회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미 그때 사람들은 영혼의 윤회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뒤를 이어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는 유럽 사상의 토대를 형성했다.

소크라테스는(BC470~BC399)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신(神)에 불경(不敬)했다’라는 이유로 고소되어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고 다음과 같은 훈계를 남겼다. 재판정을 떠나면서도 당당하였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저는 죽기 위하여, 여러분은 살기 위하여….

그러나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곳으로 가는지, 신만이 알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죄를 짓고 사형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잘못됐다고 자백하지 않아 벌금형 받았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얼마 되지도 않은 벌금을 지급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죽기 직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나는 곧 하나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꿈도 없고 악몽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영원한 잠에 빠져 소크라테스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세상 저편에 있는 세상으로 넘어가 새로운 삶을 살거나 둘 중 하나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 출처: 위키피디아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 출처: 위키피디아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이탈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는 영혼은 불사불멸하며 죽은 자의 영혼은 다른 자로 되살아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 말은 영혼의 환생, 윤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소크라테스는 환생과 윤회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 이성을 따라 참되게 살아온 진정한 철학자의 영혼은 죽은 후에는 신의 세계로 들어가서 인간적인 모든 악에서 해탈할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는 게 소크라테스의 신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준비되는 동안, 피리로 음악 한 소절을 연습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을 배울 거 아닌가?”라고 답했다는데, 그의 신념을 잘 나타내주는 일화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몸으로부터 분리돼 홀로 순수한 상태로 존재한다. 영혼은 죽지 않으며 파괴될 수도 없다’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을 돌보는 일이 철학’이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스승은 천상에, 제자는 지상에 관심 두다>

플라톤은(BC428~BC348)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의 스승이다. 서양 철학의 토대를 형성한 플라톤의 영혼관은 영혼 불멸을 믿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계승했다. 플라톤 철학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서는 후학들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봐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지난 2천 년간의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단 한 줄에 불과하지만, 플라톤 사상의 위대성을 실감 나게 해주는 말이다. 플라톤의 주장에 대해 2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가 저마다 해석과 설명을 달리하면서 의견을 달아온 것이 서양의 철학이라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또 “철학이 하나의 큰 건물이라면 그 건물의 현관은 플라톤 철학이다. 플라톤 철학을 거치지 않고서는 철학에 입문할 수 없다”라면서 플라톤 철학의 위대성을 강조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영혼불멸설을 추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비판하지도 않았다. 스승 플라톤이 천상의 이데아에 관심이 많았다면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현실에 관심이 많았다.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Wikimedia Commons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Wikimedia Commons

바티칸 박물관 내 소장된 르네상스기의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는 두 사람의 극적인 차이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림 왼쪽의 플라톤은 오른손 검지를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오른쪽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스승과 제자가 추구했던 철학의 핵심을 화가 라파엘로는 각자의 손의 위치로 시각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 과학, 철학, 종교, 정치학 등등 2천여 년 동안 서구 지성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갈릴레이와 뉴턴이 등장했던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학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천여 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실감케 해주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영혼에 관하여’란 저서를 남겼다. 그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 등의 감각은 모두 영혼의 작용으로 생각했다. 가령, 불에 데었을 경우, 육체 속에 깃든 영혼이 불의 열기를 지각하는 것으로 보았다. 감각의 식별 주체가 영혼이다.

당연히 영혼은 그에 상응하는 신체 기관이 있어야 한다. 영혼은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운동하거나, 느끼거나, 지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육체 없는 영혼은 존재할 수가 없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육체는 해체되고 부패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현세 삶의 태도와 철학에 대해 강조했을 뿐 내세의 삶을 기약하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스승은 영성적 토대를, 제자는 과학적 토대를 구축하다>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사제 간은 영혼 불멸에 대한 견해를 같이하지만,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간의 사제 간은 영혼 불멸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영혼은 불멸하며, 육체와 별개로 존재한다는 태도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은 육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태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사람의 인간 영혼에 대한 이해와 사상체계는 기독교 사상체계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

왼쪽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scienceabbey
왼쪽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scienceabbey

플라톤이 종교와 철학의 아버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의 근간에는 영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단순히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 세계를 파고들었고, 자신의 내면에 그 세계가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의식의 내면이 영적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인물이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적 세계 존재에 대해선 회의적 입장이었다. 영적 세계와의 교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지식과 질서의 뿌리는 저 멀리 위대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눈앞에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인류의 영성적 토대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의 과학적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며, 이 두 사람의 견해차가 오늘날에도 해소되지 못한 채 과학은 신과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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