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⑮불사와 필사 (2)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⑮불사와 필사 (2)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9.0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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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인간은 ‘필사’라서 지구에 태어난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그는 무엇을 잃기 싫어서 영생을 추구하려는 것일까? 남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 중에는 커즈와일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진시황보다, 알렉산더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을까? 무엇을 잃기 싫은 걸까? 재능일까? 재물일까? 둘 다일까? 재물이든 권력이든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죽음을 더 두려워했다. 진시황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욕망의 또 다른 표현법이다.

커즈와일의 머릿속엔 과학적 사고방식, 과학적 해결방식만 가득 찬 것 같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를 부품의 집합체로 본다. 부품이 고장 나면 다른 제품으로 갈아 끼우면 기능이 정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세상과 자연을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 과학적 환원주의(Reductionism)다.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어 각 부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람도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들과 장기들의 단순한 집합체로 본다. 어떤 부위가 고장이 나면 수리하거나 교체하면 된다는 인식이다. 그는 이렇게 해서 영생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뒷장에서 설명할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죽음’의 저자 셀리 케이건의 물리주의 태도와 똑같다. 셀리 케이건은 ‘인간을 소멸하는 육체 기계’로 본다. 시계가 고장 나면 부품 갈아 끼우듯 인간도 그렇게 하다가 교체 불가능할 정도로 쓸모없게 된다면 그것을 죽음이라고 보는 사람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다 더하면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이 기계처럼 부품을 분해했다가 조립한다고 다시 인간이 된다고 보는 것인가?

그 어떤 인간도 영생불사에 성공한 적 없다. 가능 여부를 떠나 영생불사가 이뤄진다고 가정해보자, 영생불사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삶이 가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가 가치 있는 것은 희소성을 가졌고 대량 생산할 수 없는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가 일반 돌처럼 흔하고 지천으로 널려 있다면, 일 푼의 값어치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사람도 죽지 않고 태어나기만 한다면 지구는 인간들로 넘쳐날 것이다. 삶이 영원하다면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공간이든 물질이든 서로 많이 가지려고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인간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졌다. 육체의 유한성도 공평하게 공통으로 주어졌다. 인간은 한계를 인식하기에 삶을 더욱 충실하게, 아름답게 가꾸려고 애쓰는 것이다.

영화 ‘아일랜드’는 고객의 고장 난 장기 대체용으로 복제 인간을 양성하는 내용을 다뤘다.

2005년 상영된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 중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당첨된 된 동료를 축하하는 장면. 이는 잔인한 속임수로 당첨자는 장기적출대상자로 결정되어 죽는다는 의미다.
2005년 상영된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 중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당첨된 동료를 축하하는 장면. 이는 잔인한 속임수로 당첨자는 장기적출대상자로 결정되어 죽는다는 의미다.

물질적 생명을 조금 연장한다고 해서, 인간이 어찌 영생을 얻는다는 것인가? 인간이 지구상에서 영생할 수 있었다면 인간은 처음부터 지구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인간은 불사(不死)가 아니라 필사(必死)이기에 지구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우주 법칙이고 조물주의 생명 원리다.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설명할 것이다.

<미국의 20대 여성 장례지도사의 따끔한 한마디>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케이틀린 도티(Caitlin Doughty)’ 라는 여성은 20대에 장의사로서 장례업계에 발을 들인 당찬 여성이다. 20대에 LA의 어느 화장장에서 6년간 일한 경험을 담은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라는 책을 썼다. 제목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이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신랄한 죽음 안내서 역할을 한다. 뉴욕타임스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독자와 함께 한 ‘케이틀린 도티(Caitlin Doughty)’University Bookstore에서 유튜브 캡처
독자와 함께 한 ‘케이틀린 도티(Caitlin Doughty)’University Bookstore에서 유튜브 캡처

인간의 필사 운명에 대한 그녀의 표현은 객관적이지만 직설적이다. 그녀는 “나는 화장장 냉장고에 쌓인 시신들을 수십 구씩 다룬다. 시신들을 대하다 보면 아무리 영광스럽게 포장해도 시체는 우리가 먹고 싸고 끝내 죽을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 준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앞으로 시신이 될 사람이다”1) 라고 쐐기까지 박아 버린다.

그녀의 하루는 오전 8시 30분에 화장로를 켜면서 시작한다고 했다. 화장로의 온도가 섭씨 816℃는 되어야 시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온도가 되면 화장할 시신들을 ‘시신 냉장고’에서 찾아와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냉장고 속을 뚫고 들어가 나는 첩첩이 쌓인 시체 박스에 인사를 한다. 냉장 트럭에서는 얼음에 재운 시체 냄새가 난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잊을 수 없는 냄새다”2) 라면서 하는 일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녀는 인간의 존엄성을 일부러 빼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아무리 고상한 척 해봐도 결국 죽을 운명이고 죽으면 인간 육체는 육체 덩어리일 뿐이다’라는 사실도 애써 강조하려는 것 같다. ‘인간의 필사 · 필멸은 필연’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듯이···.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시작도 중요하고 마무리는 더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출산과 결혼식은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장례식, 죽음이란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만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죽음의 현장 경험이 많은 사람은 한결같이 말한다. “죽음을 직시하면 삶이 풍요로워질 뿐만 아니라 삶도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라고····.

첨단과학은 인간 삶의 질을 개선하고 수명을 조금 더 연장해 주는 정도로 만족을 해야 한다. 불로장생의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 개미가 나름대로 성채를 쌓고 견고한 아성을 구축해 본들 인간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개미들의 아성을 장난감 놀이보다 더 쉽게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가 있다. 지구 차원으로 얘기하면, 인간이 최첨단 과학 문명을 자랑해도 규모가 큰 자연재해 한 번이면 휘청거린다. 연거푸 몇 번 반복하면 원시시대로 되돌아간다.

인간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바이러스 하나에도 쩔쩔맨다.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세계를 마비시켜도 어찌할 줄을 모른다. 나라마다 문 걸어 잠그기 바빴다. 코로나 대유행 때 생생하게 겪었다.

산은 가만히 있는데 오만한 등반가는 산을 정복했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깊은 계곡, 거대한 자연경관을 본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슴에 품는다. 감히 정복이니 점령이니 하는 끔찍한 말은 입에 담지 않는다. 제대로 된 등반가라면,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자연에 감사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갈릴레이, 육체 불멸주의자를 바보라고 꾸짖다>

물질 세상에 몸을 붙이고 산다 해서 물질이 전부라는 사고에 빠져서는 안 된다. 물질 속에 깃든 영성을 맑게 하고 깨끗이 하려는 자세가 훨씬 중요하다,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옛날 로마개선 장군이 시가행진할 때,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쳐진 소리였다.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개선하는 Aemilius Paulus. 출처: Wikimedia Commons☞ 후일 집정관이 된 파울루스는 BC 216 한니발과의 칸나에 전투에서 전사한다.파울루스는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았다
개선하는 Aemilius Paulus. 출처: Wikimedia Commons☞ 후일 집정관이 된 파울루스는 BC 216 한니발과의 칸나에 전투에서 전사한다.파울루스는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았다

승자도 패자도 결국엔 육체적으로는 다 죽을 운명이다. 아무리 현대 과학이 발달한다 해도, 아무리 유전자 혁명에 또 유전자 혁명을 일으켜도, 기계가 인간의 지능 수준을 갖추는 시기가 오더라도, 혹은 그 시기를 넘어 인간의 지능 수준을 뛰어넘는 특이점 시기가 온다 해도, 우리 인간은 여전히, 생존하는 한 영원히,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 사는 육체적 필사의 존재일 뿐이다.

천동설 패러다임을 지동설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킨 수백 년 전의 과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인간의 영생 노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한다.

“바보들은 계속해서 살고자 하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은 환상에 목을 맨다. 그들은 인간이 만약 불멸하는 존재라면 이 세상에 오지도 않았으리란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3)

갈릴레이는 영원을 보석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있다. 그는 천체과학자이면서도 다른 과학자와는 달리 유물론 시각에 빠지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대목은 과학자로서 가지기 어려운 비물질적 고차원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물질 세상의 우주원리도 통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인간은 필사할 것이기에 지구에 태어난 것임을 400년 전 갈릴레이가 꿰뚫고 있다.

인간 세상이 불멸하는 세상이었고, 불멸이 가능한 세상이었다면 인류가 지구상에 첫발을 디뎠던 그때부터, 처음부터 우리는 죽지 않았다. 인간 세상이 육체적으로 필사하는 세상이었기에 불멸의 영적 존재들인 우리가 인간체험을 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온 것이다. 영혼은 불멸이다. 육체적 죽음은 차원 이동일 뿐이다. 육체적으로 필사인 세상에서 불사를 추구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욕망임을 갈릴레이가 간파하고 있다.


1) 케이틀린 도티(저),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임희근(역 ), 반비, 2020, 240p

2) 같은 책 41~42p

3) 조너던 와이너(저), 과학, 죽음을 죽이다, 한세정(역), 21세기북스, 2011,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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