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⑬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인생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⑬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인생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8.3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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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분만실에서 시작하고 영안실에서 마무리되는 인생>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다. 어른이 된 뒤에는 짝을 만나 결혼하여 자식 낳고 살다가 때가 되면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인간들의 공통된 일생이다.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해 사망자 수는 28만여 명이다. 만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5~26만여 명이다. 사고나 자살 등 외인성 사망자는 2~-3만 명 선이다.

제공 : 픽사베이
제공 : 픽사베이

이 중 75%인 21만 명은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은 5만여 명으로 15.3% 수준이다. 이들도 병원에서 죽기 싫어한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게 되지만, 57%는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한다. 병원에서 죽는 비율 75%는 미국의 9.3%, 영국의 55%에 비해 너무 높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대개 한국인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병원은 10%에 불과했다. 집 떠나 죽는 것을 객사라 여기며 꺼린 탓이다. 병원에서 투병하는 사람도 임종 무렵에는 집으로 모시고 갔다. 1) 이게 30년 만에 역전됐다.

예전에는 죽음뿐만 아니라 출생, 결혼, 출산, 장례 등 핵심적인 경조사 의례들이 가정에서 이뤄졌었다. 모두가 집에서 태어났다. 어른이 된 뒤 혼례도 신붓집 마당에서 올렸다.

아이를 낳을 때도 산파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낳았다, 사망하면 대문 앞에 ‘상중(喪中)’, ‘기중(忌中)’이란 등불을 매달아 놓고 조문객을 받았다,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메는 ‘상여’를 타고 마을 길을 따라 묘지로 갔다. 경조사 모두 가족, 친지, 이웃 주민들이 동원돼 마을 공동행사처럼 치렀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핵심 경조 의례들이 모두 집 밖에서 이뤄진다. 출생은 병원에서, 결혼은 예식장에서, 출산은 다시 병원에서,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매장하면 공동묘지에 묻히고 화장하면 화장장에서 화장 후 뿌려지거나 납골당에 안치된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중요한 경조 의례들이 외부에서 남의 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남이라는 사람들, 장례와 관련한 ‘코디네이터’를 전문으로 하는 장례지도사들은 삶과 죽음을 어찌 바라보고 있을까?

<장례지도사가 본 삶과 죽음>

2009년 상영된 김명민과 하지원 주연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가 화제가 된 적 있었다. 김명민은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가는 남자였고, 하지원은 그런 김명민을 사랑하는 여성 장례지도사로 나온다. 장례지도사는 예전엔 장의사라고 불리던 직업이다.

죽은 사람 몸 닦아주고, 안색 좋도록 화장도 해주고, 상처 난 곳은 꿰매도 주고, 면도도 해주고, 수의를 입혀주는 일이다. 빈소부터 염습, 입관 등 장례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직업이다. 여성 장례지도사는 영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17년 경력의 모 여성 장례지도사는 2년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손도 만지려 하지 않았어요. 그 손으로 밥하고 나물 무치느냐는 말까지 들었죠. 요즘엔 그런 편견이 없어요. 이 일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라고 말했다.2) 위 인터뷰 여성처럼 예전에는 여성이 선택하기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그런 힘든 일에 수년 전부터 20대 여성들이 용감무쌍하게 뛰어든다.

대학원을 졸업한 유능한 20대 여성 한 명이 8년 전 장례지도사 직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8년 뒤인 2018년에 책을 한 권 썼다. “이 별에서의 이별” 이란 책이다. “지구라는 별에서의 이별”이란 의미다.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이 책에는 가슴 저미는 아픈 사연들이 많이 소개돼 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후비고 올라오듯 되새기게 만든다.

저자는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예외 없이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그 지극히 본능적인 물음을 인정해야 한다.”3)라고 강조한다. 당연한 말이다. 우리는 이 당연한 말을 머리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슴으로는 너무 모른다. 가슴으로 못 느끼니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

예전에는 부족한 식량, 빈약한 의료 수준, 열악한 주변 환경 등의 영향으로 어린아이들도 일찍 죽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 수명도 길지 않아 성장 과정에서 죽음을 수시로 체험했다.

마치 영국이 ‘죽음 알림주간’을 설정해 죽음을 교육한 것과 같은 효과를 우리는 마을의 공동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 냈다. 영국의 ‘데스 카페’ 기능은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아무 개집 사랑채나 건넌방에서 이뤄졌다. 죽음과 관련된 대화는 동네 연장자의 주도하에 상시적, 다반사로 행해졌다. 마을 사람 상당수가 장례전문가급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영국에서 장의사가 시신 대하는 법을 대외적으로 교육하는 장면 등은 예전 한국 사회에선 할 필요가 없었다.

예전엔 죽음은 마을에서 일상적이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도 지금보다 작았다. 산업화를 통해 경제가 발달하니 식량문제도 해결되고 핵가족화는 가속화되었다. 죽는 문제는 병원에서 도맡아 진행하다 보니 장례는 ‘나의 일’에서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가족의 장례도 남의 손에 맡겨버렸다. 이웃의 장례는 병원 영안실에 차려진 빈소에 조문하는 것으로 끝냈다. 죽음과 장례절차에 방관자적 처지에 놓이다 보니 죽음이 낯설고 어색해졌다. 게다가 웰빙 웰빙 하면서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삶에 대한 집착은 강해졌다.

죽음은 낯설어짐을 넘어 재수 없는 것, 제일 싫고 무서운 것이 되어버렸다. 유교적 사생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예전에는 죽음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체험하고 절차에 자주 참여하다 보니, 죽음은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두려웠지만 덜 두려웠다. 지금은 원스톱 서비스로 상조회사에서 전문적으로 장례를 맡아준다. 조문객들도 말 그대로 객으로 해야 할 역할만 하고 끝낸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출산에서 장례까지 번거로운 일손을 들게 돼 많이 편리해졌다. 손이 많이 가는 큰일들을 남의 손을 빌려 행한다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삶의 출발과 끝이 모두 병원에서 이뤄지다 보니 죽음을 타자화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 부작용으로 죽음을 필요 이상 두려워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준비하면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편안한 죽음’으로 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장례문화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일부 전문가들은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장례 의식과 절차의 변화를 주장한다. 죽음을 회피하면 할수록 당하는 죽음을 맞기 쉽다. 죽음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맞이해보자는 취지에서 생전장례식 문화의 확산을 제의한다.

실제 일본에서는 2017년 12월 건설 분야 대기업 ‘안자키 샤토루(’당시 80세) 전 회장의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그는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수술 불가 판정을 받았다. 모든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정신이 멀쩡할 때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본인이 없는 사후 장례식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

안자키 사토루 전 회장은 2017년 11월 일본 신문에 자신의 생전장례식 부고 광고를 냈다. 그는 생전장례식에서 휠체어를 탄 채 식장을 돌면서 손님들과 일일이 악수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6개월 뒤 8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우리나라에서도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2018년 8월 14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에서는 말기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김병국 씨(당시 나이 85)의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김병국 씨는 "죽는 게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다. 이 세상 즐겁게 살다가 이제 당신들과 작별할 때가 왔다. 그동안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싶다."라고 했다.

장례식 콘셉트를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으로 정했다. 검은 옷 대신 예쁜 옷을 입어달라고 참석자들에게 주문했다. “축하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렇게 즐겁게 보내고 싶었어요. 그런 자리에 검은 옷은 안 어울리잖아요?” 실제로 장례식은 그가 바란 대로 조문객들이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작은 축제 같은 행사로 진행됐다. 그는 평소 가장 좋아한다던 여성 듀엣 산이슬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다.4)

서길수(75) 전 서경대 교수도 생전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고구려발해학회(전 고구려연구회) 회장을 지내며 중국의 동북 공정에 맞서 싸운 학자였다. 고구려 산성 130곳을 발견한 고구려 연구 권위자다. 서길수 전 교수는 그는 친지들에게 다음과 같은 부고장을 돌렸다. 제목은 '살아서 하는 장례식과 출판기념회'였다. 다음은 언론에 소개된 서 교수의 생전장례식 장면이다.5)

서 교수가 자신의 부고장을 직접 썼다. 부고장의 모시는 글에는 생전장례식 취지를 담았다.

"나는 늘 마음에 죽음을 새기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할 유언을 준비하다가 생각했습니다. '죽은 뒤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살아서 조문 온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는 게 좋겠다.' 그러려면 장례식을 살아서 해야 했습니다.“

2019.12.21.일 오후 1시 서울 이화여대 근처 한 강연장. 서 교수의 생전장례식이 열린 곳이다. 그는 한복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문상객을 맞았다. "제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상중(喪中)인 큰며느리가 밝은 얼굴로 접수를 맡았다. 부의함은 없었다고 한다. 생전장례식은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쉽게 시도해 볼 수 없다.

그는 2009년 정년퇴직 후 강원도 산사에 들어가 3년간 죽음을 공부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고 반드시 죽습니다. 과일이 익으면 떨어지듯이요. 두렵지만 맞아들여야 합니다. 죽음을 슬퍼한다고 해서 어떤 실익이 있나요? 이치를 받아들이면 슬프지 않아요. 몰라서 두려운 겁니다."”라고 말한다. 서 교수의 사생관은 죽음을 공부한 결과였다.

“죽음은 전체 생애에서 마지막 부분이잖아요. 입시 공부, 취직 공부는 얼마나 열심히들 합니까. 정작 가장 중요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서 교수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죽음도 공부해야 할 분야라고 강조한다. 공부라고 하지만 결국은 인식의 문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 올바른 사생관 형성이 중요하다.


1) 허대석.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글 항아리. 2018.13~15p

2) 양영유. <염하는 대학생들 … “AI 시대에도 가장 아름다운 손길이죠”>. 중앙일보. 2018.3.19

3) 양수진. <이 별에서의 이별-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싱긋. 2018, 9p

4) 이진구. <“장례도 끝났고… 이제 죽는 것만 남았나요? 하하하”>. 동아일보. 2018.9.3.

5) 박돈규. <故人도 哭도 없는… "제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일보.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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