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⑫돈 되는 장례식장, 돈 드는 호스피스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⑫돈 되는 장례식장, 돈 드는 호스피스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8.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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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인간미래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의료 수준은 선진국, 죽음의 질은 후진국>

우리는 손꼽히는 의료선진국이지만 ‘죽음의 질’에선 의료 수준을 훨씬 밑돌고 있다.

2010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연구소가 ‘죽음의 질’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을 포함한 4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은 32번째였다. 5년 뒤 2015년 80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18위를 차지했다. 비약적인 의료 발전 등으로 5년 전보다 순위는 올랐다. 실제 ‘죽음의 질’ 향상으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1년 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회원국 대상으로 삶의 질을 평가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38개국 가운데 28위를 기록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의료 수준과 죽음의 질 수준과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결과였다.

출처: KBS 뉴스 캡처(2016.5.11)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출처: KBS 뉴스 캡처(2016.5.11)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2010년과 2015년도 조사에서 영국은 부동의 1위였다. 2위 호주부터 5위 벨기에까지는 순위변동이 없다. 두 조사 모두 미국은 9위였다. 2015년 조사에서 대만은 6위고 싱가포르는 12위다. 모두 우리보다 앞선다. 이웃 나라 일본도 2010년 23위, 2015년 14로 우리보다 앞섰다.

의료 장비나 의료진의 치료 기술에 중점을 둔 평가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식, 임종 환자 치료 숙련도 등이 중점 평가 기준이었다. 영국은 의료의 질이나 장비 면에서 우리보다 뒤떨어지는 나라다. 그런데도 죽음의 질 평가에서 월등히 앞섰다. 임종 환자를 위한 임종시설 시스템 구축 등 환자에게 제공되는 통증 완화, 심리적 평안함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영국은 매면 5월이면 다양한 죽음 관련 행사를 개최한다. 금기사항인 죽음에 대한 빗장을 과감히 연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죽음’을 공식적인 논의대상으로 삼도록 유도했다. 5월 중 ‘죽음 알림주간’을 설정해 일주일 동안 어느 곳에서든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죽음 관련 대화의 장을 마련해 준다. ‘EBS 생사 탐구 대기획 Death 제작팀’이 행사 장소를 방문, 취재한 결과가 흥미롭다.

민간이 운영하는 ‘데스 카페(Death Cafe)’도 생겼다. 누구든지 방문해 음식과 음료를 들면서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한다. 미국의 한 시민이 이 장면을 보고 벤치마킹해 미국에서도 ‘데스 카페(Death Cafe)’를 오픈했다. 지금은 18개국에서 800개 넘는 카페가 생겨났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카페에서 차와 케이크를 들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출처 : 애리조나 데일리 스타 (2013.4.7)
미국인들이 카페에서 차와 케이크를 들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출처 : 애리조나 데일리 스타 (2013.4.7)

‘죽음 알림주간’에 ‘죽음 맞이하기 좋은 날’(A Dead Good Day Out)을 개최해 죽음을 활짝 열어 신나는 노래로 만들어 버린다. 23년간 장의사로 활동해 온 사람은 시신 대신 인조모형을 놓고 시신을 대하는 법을 교육한다. 행사장에 검은 옷 입은 저승사자나 검은 띠 두른 영정사진은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한 모습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1)

영국이 죽음의 질 조사에서 1위를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죽음의 질’이 하위인 이유>

우리는 의료선진국이면서도 왜 죽음의 질에선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할까?

첫 번째, 죽음을 부인하고 혐오하기에 반대로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도, 병원 중환자실에 남아서 임종을 맞는 경우가 55%다. 미국의 8.8%에 비해 6배 이상 많다. 2007년 국립암센터 윤영호 암 관리 사업부장과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연구팀의 조사 결과2) 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 연구팀은 국내 17개 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한 3천7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항암 화학요법실시 여부를 조사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망 6개월 전에 항암 화학요법을 받은 암 환자는 48.7%에 달한다. 2명 중 1명꼴이다. 사망 3개월 전에도 43.9%의 환자가 항암 화학요법을 받았다.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사망하기 한 달 전에도 30.9%가 항암 화학요법을 받았다. 말기 암 환자 10명 중 3명꼴이다. 10명 중 1명도 못 되는 9%의 미국과 비교해 3배 이상이다. 앞서 말한 중환자실 이용 빈도나 말기 암 환자 항암제 투여 비율이 미국보다 너무 높다. 임종이 가까운데도 전혀 불필요한 항암치료를 받는다. 환자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죽음의 질이 좋을 수가 없다.

두 번째, 가족들이 환자의 고통 경감보다 환자에 대한 도의적 측면을 먼저 생각한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는 통증을 줄여주는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용량은 선진 외국의 10% 수준이다. 생존 가망이 없는데도 마약중독을 걱정하기 때문이란다.

‘죽으면 끝’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이다. 가망 없음에도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는 도의적 의무 준수는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 못하면 평생 죄책감으로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삶을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

세 번째, 죽음을 다루는 사람들, 죽음 시설들에 대해 차갑고 냉정한 태도도 문제다. 2009년 8월 헌법재판소는 ‘학교 주변에 납골당 건축을 불허하는 판결’을 내렸다. 아이들에게 상복 입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 불허 이유였다.3)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른들부터 폐쇄적이고 부정적인데 아이들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아이들이 죽음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영국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납골당 뿐만 아니라 장례식장, 화장장 등을 혐오 시설이라 부르며 내가 사는 지역에 설치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나중에 자신도 이용할 시설임에도 ‘죽음’ 시설을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꺼린다.

네 번째, 병원들의 호스피스 외면 현상이다. 대형 병원들은 ‘장례식장은 돈이 돼도 호스피스는 돈이 든다.’ 라고 생각한다. 병원들은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수요자들인 환자 가족들은 왜 찾지를 않을까? 진정 고인을 생각했었다면 사후에 벌어지는 장례식보다 생전에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 병원이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특이한 나라, 한국>

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는 언론에 연재한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6)4) 를 통해 국내대형 병원들의 호스피스 외면 현상을 꼬집고 있다. 윤 교수는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7개 국립대 병원의 2018년 감사보고서를 분석했다. 7개 국립대 병원들이 2018년 한해 159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익률은 약 46%다.

이런 결과와 관련해 윤 교수는 “장례식장 운영은 병원들의 적자를 메울 수 있는 부대 사업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국립대 병원들이 이럴 지경인데, 다른 ‘빅5’를 비롯한 민간병원들은 오죽하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어 윤 교수는 “세상 어느 나라에 장례식장을 병원들이 운영하고 있는지, 듣도 보도 못한 요지경이다. 전국에 장례식장 1,114개가 있다. 대학병원들까지 보탤 이유는 없다.”라고 강조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말기 환자에게 호스피스 케어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WHO와 반대로 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윤 교수는 “ ‘빅5’를 자랑하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중 유일하게 서울성모병원만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 지금도 호스피스 병동이 부족해 입원을 못 한 채 환자들과 가족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한다.

의사들도 의무기록에 환자의 사망을 ‘죽다’(Die) 라고 적지 않고 ‘만료되다’(Expire)라고 적는다고 한다.5) 의사들조차 죽음이란 단어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비켜선다. 결국,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후진적인 인식이 죽음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가망이 없음에도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간다. 보호자도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해 환자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생기게 될까 두렵다. 마취성 진통제 투여도 못 하게 하면서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를 강행한다. 내가 죽이지 않았다는 심리적 방어기제, 내가 다치고 싶지 않아 환자를 다치게 하는 것은 이기심의 발로다.

“엄마 잘되자는 것이 아니라 너 잘되라고 공부하라는데 왜 엄마 말을 안 듣니?”

“나 좋아지라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좋은 것이기에 연명치료 해달라는 것 아니냐?”

자식을 위한다는, 환자를 위한다는 그 말속에 엄마의 이기심과 보호자의 이기심이 번뜩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환자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암 환자 전체 진료비의 3분의 1가량을 죽기 한 달 전에 지출한다고 한다. 그 돈으로 호스피스 병원으로 보내 안락한 죽음을 맞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질 않는다.

<환자나 고인은 없는 임종과 장례 과정>

장례식도 마지막 가는 길이라면서 값비싼 비용을 지급한다. 유가족들의 체면과 허례허식도 호화 장례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 장례식장은 격조 높은 시설들이 많아 호텔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조화도 넘쳐난다. 수요자가 찾으니 장례식장은 번성한다. 병원에서 호스피스 보다 장례식장에 먼저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요가 없는 곳에 누가 투자하겠는가? 돈 되는 장례식장, 돈 드는 호스피스다.

조촐한 장례를 치르더라도 생전 고인이 삶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고통 없이 영적 안정감 속에 세상과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진정 고인을 위하는 길이다.

제공 : pxfuel
제공 : pxfuel

우리의 임종이나 장례 과정을 한번 보자. 환자나 고인의 의중은 역설적이게도 ’환자나 고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시되고 있다. 지금의 장례식은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해 벌이는 쇼(Show)의 성격이 강하다. 환자나 고인을 그렇게 보낸 자신도 나중에 똑같은 길을 밟는다. 그때가 되어서야 죽음의 질이 낮은 환경 속에서 죽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리고는 그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환자 대부분은 죽음보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더 두려움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편견도 깨뜨려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죽음을 맞게 되면 대부분 우왕좌왕한다. 미리 준비하고 정리해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자는 것이 웰다잉이다. 준비된 죽음. 아름다운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이 될 수 있도록 죽음 교육은 필요하다.

<불필요한 고통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자>

중앙 일간지 머니투데이는 2019년 10월 22일 ‘2019 인구 이야기 팝콘(PopCon)’ 세미나를 개최했다.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가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이 세미나 6세션에서는 ‘에이징앤다잉(Aging&Dying)’문제를 다뤘다. 이 세미나에서 유은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현세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 때문에 한국 사회는 죽음을 특히 더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옳은 지적이다. 유 교수는 이어 “전생, 부활 등 죽음을 다루는 기독교와 불교도 확산돼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는) 죽음을 더 터놓고 얘기하는 사회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유은실 교수는 이어 "인류는 죽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 ‘죽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이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이 마련되길 바란다.”라고 희망했다.

유은실 교수는 죽음에 대해 높은 인식을 가진 분인 것 같다.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무장된 현직 의사로서 죽음에 대해 이런 수준의 인식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죽음을 선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은 선물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설명할 것이다. 삶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는 고질적이고 후진적인 생사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의학계나 과학계에서도 죽음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게 되길 희망한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인들에게 선한 영향력도 많이 보여줬다. 이번에 코로나 대유행 사태에서 우리는 늠름하고 의연한 대처로 성숙한 선진 시민 의식을 보여줬다. 서구 선진국이라 해서 높은 시민 의식만 가진 것이 아님을 이번에 똑똑히 알았다. 오히려 이들 나라에서 한국인의 시민 의식을 보고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왜 우리가 이들 나라보다 열악한 사생관으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불필요한 고통의 연결고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1) EBS 다큐프라임 생사 탐구 대기획 죽음. Death 제작팀. 2014. 169~181p

2) 서한기. <암 환자 30.9% 사망 1개월 전까지 항암 화학요법 받아>. 연합뉴스. 2008.1.3

   윤영호 부장은 지금은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3)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비아북. 2018, 238~240p

4) 윤영호.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6). 경향신문. 2019. 6.27

5)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비아북. 2018.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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