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⑩우리는 말로만 죽는 행위를 반복한다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⑩우리는 말로만 죽는 행위를 반복한다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8.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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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말끝마다 죽겠다는 어법으로 죽음을 타자화시키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말끝마다 ‘죽겠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말끝에 ‘죽겠다’라는 말을 붙여도 말이 통할 정도다. 말은 죽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배불러도 죽겠고 배고파도 죽겠다고 한다. 배고파 죽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배가 불러 죽겠다는 것은 우스운 표현이다. 추워도 죽겠고 더워도 죽겠다고 한다. 미워서도 죽겠고 좋아서도 죽겠단다.

한국 사람에겐 ‘죽겠다’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강조 어법일 뿐이다. 네이버 사전에도 ‘죽겠다’라는 영어식 표현을 ‘Emphasize the words’로 해놓았다. 영어로 ‘Very’(매우, 대단히)로 해석하면 무리 없이 의미가 전달된다. 하지만 영어권 사람에게 'Do you want to die?', 'You would die'라는 표현은 조심해야 한다.

말싸움할 때도 죽음이 등장한다. ‘너 맞아 죽고 싶어?’ ‘너 죽을래?’

참 이상한 어법이다. 맞는 것도 싫은 일인데 맞아서 죽을 정도라면 어느 누가 그런 선택을 하겠는가? 그런데도 왜 상대방에게 맞아서 죽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인지?

그리고 또 미인이나 멋진 분위기나 물건을 발견할 때, 맛있는 음식 등을 표현할 때 ‘죽인다’ ‘죽이네’는 표현을 쓴다. ‘맛집 죽이네’ ‘때깔 죽인다’ 분위기 죽인다‘‘ 입에 감치는 그 맛 죽이네‘ 등등

진짜 죽음과 연결되는 일이거나, 상태가 좀 심각할 때도 ‘죽을 것 같다’ ‘죽을 뻔했다’라는 표현을 쓴다. 한국인은 억양과 표정 차이로 심각성 유무를 잘도 가려낸다. 그러고 보면 일상적인 표현 중에 죽음과 관련된 단어가 참 많이도 녹아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매우‘ ’아주 좋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죽겠다‘ 어법이 왜 일상 대화 속에 많이 들어있을까?

‘죽음학’ 강의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가 밝힌 에피소드다. 2009년 어느 지자체에서 ‘죽음학’ 강의를 요청해와 ‘죽음과 임종’으로 주제문을 보냈더니,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 칙칙하다는 이견을 보내와서 ‘아름다운 마무리’로 제목을 변경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에게 죽음을 매개로 한 표현이 발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혐오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죽기 싫다는 마음을 반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항시 폐문’ 푯말이 무색하다. pxHere 제공
말과 행동이 다르다. ‘항시 폐문’ 푯말이 무색하다. pxHere 제공

우리는 말로만 죽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죽음을 남의 일, 즉 타자화시킨다. 죽는 것은 남의 일이고 내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평소 말속에 죽음과 관련한 표현들을 즐겨 사용하면서 ‘죽음’을 정식으로 언급하면 싫어하거나 꺼린다. 한국인인 이율배반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죽음을 돌려서 말하는데 선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죽겠다는 말을 과다할 정도로 많이 사용하면서도 죽음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한다. 우리나라만큼 죽음을 돌려서 말하는 은유적 표현들과 죽음 관련 단어를 많이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별세, 사망, 세상 떠나다. 영면, 서거, 타계, 최후를 마치다, 사거, 운명, 작고, 소천, 붕어, 승하, 선종, 입적, 열반, 사멸, 돌아가시다, 숨을 거두다. 유명을 달리하다. 목숨이 끊어지다, 졸하다. 몰하다, 눈을 감다. 황천 가다, 북망산 가다, 하늘나라 가다, 밥숟가락 놓다. 이승을 떠나다, 저승에 가다, 세상을 하직하다, 불귀의 객이 되다, 골로 가다(보내다), 뒈지다, 거꾸러지다 등등

제공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우리는 죽음을 빙빙 돌려서 은유적으로 말하는데 선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회피하는 문화를 가졌다. 그 이유에 대해 한국 죽음학의 대가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유교의 영향이 크다. 유교는 내세관이 없다, 고려 왕조의 불교가 지속되었더라면 장례문화를 비롯해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별것 아닌 것을 단순히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죽겠다는 표현을 약방 감초처럼 많이 사용하면서도 정작 죽음은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죽음을 정면에서 주시하지 못한다. 대화 중에 누군가가 죽음에 대해 언급하면, 쓸데없는 소리 한다느니, 재수 없는 소리 한다느니 하면서 말문을 막는다. 사(死)자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대형건물이나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4층 표기가 없다. F층이거나 5층으로 건너뛴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하다 보니, 죽음에 대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기법들이 발달했다. 죽음을 꺼리는 문화임에도, 자신을 죽이는 자살률은 OECD 국가 최고 수준이다.

영성을 우선시하는 것이 종교다. 각 종교는 저마다 죽음을 초월한 새 세상과 관련된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유럽이나 북미, 남미 등의 나라는 대부분 개신교든 천주교든 기독교 문화권이다. 인도는 힌두교를 믿고 동남아시아 대부분은 불교 문화권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몇몇 나라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이들 나라는 국교까지는 아닐지라도 지배적으로 신봉하는 특정 종교가 있다.

<종교 백화점 나라의 이율배반적 죽음관>

반면 우리나라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무교 등이 대등한 비율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종교를 신봉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종교 백화점, 종교 공화국이란 평가를 받아도 무방할 정도로 다양한 종교가 활성화된 나라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종교 지향적인 국가다.

죽음을 초월한 종교적 가르침을 많이 받고 종교적 영성을 우선시하는 한국인들이 왜, 유독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그 어떤 문화권 사람들보다 폐쇄적이고 이율배반적일까?.

언어, 종교, 문화 등에서 이율배반적인 사생관을 갖고 있다 보니 ‘몸이 건강할 때는 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죽음을 어찌 준비할 것인지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음에 대해선 거의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그러다가 본인이나 가족의 죽음이 닥치면 ‘벌렁 나자빠지면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죽음을 '텔레비전 전원 스위치가 꺼져 화면이 캄캄해진 상태와 같다'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집이나 건물 전체가 정전돼 캄캄해진 상태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1)

죽음에 대한 인식은 '언젠가는 반드시 닥쳐올 일이지만, 당장은 너무나 무섭고, 싫으며, 혐오감마저 든다.'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죽음의 질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최악이다. 자살률도 최고 수준인 데다가 죽음의 질마저 최악 수준이다. 공동묘지, 장례식장, 화장장이 들어서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듯 기를 쓰고 반대한다. 자신을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닥쳐올 일임에도 이런 시설들이 들어서는 것은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출처: Dreamstime
출처: Dreamstime

공동묘지라는 표현 대신 영락공원 등등 ○○공원이라는 표현을 대신 쓴다. 예전부터 운세 감정에서 '객사'한다는 표현이 나오면 급격히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질색을 한다. 정작 집에서 앓다가 죽을 때는 대부분 병원을 찾아가 자발적 객사를 한다. 한국인은 죽음과 관련해 참 이율배반적인 국민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허리 아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유교적 문화 영향으로 청소년 성교육을 방치해 왔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교육은 성교육방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내팽개쳐진 상태다. 죽음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세계 일류 및 최첨단을 달리면서도 유독 죽음과 관련된 분야냐 산업은 폐쇄적, 교조적, 후진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의 칙칙하고 어두컴컴한 죽음관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죽음을 직시하고 공부하니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게 되었다고 한 서울대 학생들처럼 웰빙을 위해서라도 컴컴하고 칙칙한 죽음관은 개선되어야 한다.

1)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비아북. 2018. 229~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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