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⑨남대문이 맞을까 숭례문이 맞을까
[미래인간학자 윤태경의 '미래와 인간'] ⑨남대문이 맞을까 숭례문이 맞을까
  • 윤태경 고문
  • 승인 2020.08.12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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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미래인간학자
윤태경 미래인간학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인가? 아닌가?

이는 우리나라 국보 1호의 명칭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유사하다.

국보 1호는 남대문일까? 숭례문일까?

남대문? 숭례문? 둘 다 맞는 것 아니냐?

국보 1호와 관련해 오래전부터 지방 사람들에게 회자하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동네 마을 회관에서 마을 사람 몇 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중에서 목소리가 큰, 남자 한 사람이 말을 꺼낸다.

남자 갑: 며칠 전 서울 가서 국보 1호 남대문을 보고 왔는데, 현판에 힘차게 박혀 있 는 '南大門' 세 글자는 혼자 보기 아까웠다.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南大門 현판 글씨도 남대문처럼 국보급 글씨더라.

남자 을: (옆에서 듣고 있다가)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현판에 南大門이라니…?

현판에는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쓰여 있는 거로 아는데….

남자 갑: 무슨 소리를 하는가? 숭례문은 무슨? 자네, 서울 가봤어? 내가 이 두 눈으로 남녘 南, 큰 大, 문 門 현판을 보고 왔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나!

남자 을: ...??

결국, 서울 안 가본 목소리 큰 남자가 이겼다는 얘기다. 현판에는 숭례문(崇禮門) 세글자가 한자로 세로로 적혀있다. 이외에도 남대문에 문턱이 있네, 없네를 두고 싸움판이 벌어졌다는 또 다른 얘기도 있다. 우리 집 안방에도 문턱이 있는데, 나라의 큰 대문에 문턱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라고…. 이것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겼다고 한다.

국보 1호의 정식 명칭은 ’서울 숭례문(崇禮門)‘이다. 예를 숭상한다는 뜻에서 숭례문으로 지었다. 남대문이란 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이다.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이기에 남대문도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남대문은 만든 사람의 의도를 전혀 담고 있지 않은, 남쪽이라는 방향만 나타내는 답이기에 틀린 답도 된다. 예를 숭상하라는 숭례문의 고유 의미는 전혀 없는 무색무취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남대문이라면 그저 남쪽에 있는 큰 대문이라는 뜻밖에 없지 않은가?

조선사 연구자료 중에는 조선 시대 실록에도 속칭 남대문이라고 기록돼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조선은 반상의 구별이 엄격한 나라였기에 양반들은 숭례문이라는 정식 이름을 부를 수 있었지만, 평민이나 천민들은 그 이름을 쓸 수가 없어서 그냥 동서남북 네 방향을 붙여서 불렀다고 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답도 남대문 답처럼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죽으면 육신의 끝, 육신의 종말이라는 면에서는 맞는 답이다. 그러나 사람은 육신만으로 살아온 존재가 아니라 영육 공존으로 살아온 존재이기에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답은 틀린 답이다. 왜 틀린 답인지 증거와 함께 뒷장에서 하나하나 설명해 나갈 것이다.

< ‘죽으면 끝’ 생각은 유교의 후진적 사생관이다>

’육신 종말은 끝’이라는 유교적 가르침은 종말론적 사생관이다. 죽음을 다른 문화권에 비해 유별나게 두려워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며 산다. 죽는다는 것을 머리로, 피상적으로 인지는 하고 있으나 마음과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는 것은 남의 일이고 내 일은 아닌 것이다.

제공 : 픽사베이
제공 : 픽사베이

대부분 한국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죽음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족이나 본인이 갑자기 중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어찌할 줄을 모른다.

비통함에 빠져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기회조차 잃어버린다.

또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왔을 때, 더 이상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해 고통으로부터 완전한 종식을 희망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의 소산으로 나타나는 것이 자살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망,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변변한 부존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뜨거운 교육열 하나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나라가 한국이다. 반도체, 조선, 철강, 원전, IT, K-POP, 영화, 의료기술 및 시스템, 국민의식 등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수위를 달린다.

코로나 대유행 때 한국의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이 보여준 기민한 방역 활동, 사재기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 수준 높은 행정서비스 등은 타 국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한국이 선진국과 선진시민의식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세계 최고였다. 반면 죽음에 대한 교육, 죽음에 대한 인식은 하위권이다. 후진적인 사생관의 직접적인 피해는 죽음을 앞둔 사람과 유가족, 친지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는 매주 월요일 시체를 보러 간다. 그래서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문도 담당한다. 20년간 1,500여 시신을 부검했다는데 시신 부검을 위해서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제목으로 책도 썼다. 죽은 사람을 그렇게 많이 해부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죽음에 관해서는 프로 중의 프로다.

그런 유 교수도 죽음에 대해서는 ’세상에 이보다 무겁고 힘들고 어려운 주제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죽음을 가까이하면서 오히려 삶의 가치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유성호 서울대 법대 교수. 유튜브 캡처
유성호 서울대 법대 교수. 유튜브 캡처

이런 경험을 살려 학부 내 ’죽음과 관련한 교양강좌’를 개설했다. 학생들의 호응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들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더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 명성에 걸맞은 서울대 최고의 강의라는 극찬도 쏟아졌다. 죽음을 두렵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먼저 공부하고 준비할수록 삶을 더욱 보람되고 가치 있게 살게 된다고 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호주제, 동성동본 불혼제 등등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유교 폐습도 이제는 사라졌다. 유교의 후진적인 사생관도 이젠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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