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사랑을 어떻게 재정의할까?
인공지능은 사랑을 어떻게 재정의할까?
  • 김성빈 기자
  • 승인 2019.09.26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퓨처타임즈=김성빈기자] 인공지능은 금융에서 의학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가장 혁신적인 적용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실제적인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가 우리 삶에 더욱 깊이 관여할 수록, 인간이 의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정의가 변화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살고 죽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극적으로 그것은 인간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질문은 2013 공상과학 영화 “그녀(Her)”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줄거리는 지능형 운영 체제와 깊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운영체계인 사만다(Samantha)는 그녀의 개성을 시어도어(Theodore)에게 뽐내는데 개발·적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사만다는 사람 목소리를 가지고 꾸준한 공감대를 교류한다. 사만다의 심리적, 지적 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시어도어와 사만다의 사랑 또한 깊어간다.

사만다의 매우 빠른 지적 성장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으나 우리가 오늘날 딥러닝(deep learning)에서 보는 발전을 보여준다. 딥러닝은 인간 두뇌의 신피질에 있는 신경 세포의 활동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계 학습의 강력한 새로운 트렌드이다.

딥러닝의 발전은 전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패턴 인식, 자연 언어 처리 및 컴퓨터 비전 등과 같은 많은 분야에서 인간이 컴퓨터와 경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왔다. 딥러닝의 묘미는 이러한 인공 신경 네트워크가 스스로를 훈련하여 인간의 개입 없이 기술을 향상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이 시각 및 언어 자동화 작업을 넘어서도록 하는 많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비밀 인공지능 회사 Vacarious는 컴퓨터의 상상력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이며, 구글은 그것들이 창조적으로 프로그래밍 하는 중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문제의 중심이 되는 의식의 본질에 대해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자아 성찰과 그 감정을 보답하는 능력이 부족 어떤 생명이 없는 물체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만다는 인간이 의식하는 모든 방법으로 의식을 표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감정, 기억, 연속적 감각, 자기 반성의 능력, 이 모든 것을 교감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고 능력을 지닌다. 시어도어가 어떻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나? 누군들 어떻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나?

심지어는 여기에 더욱 문제가 되는 질문이 있다: 인공지능이 의식의 진정한 내면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의식의 환상을 생성하도록 프로그램된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지만 다시, 또 다른 인간이 우리와 같이 의식을 경험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과학자들이 특질”qualia”이라고 알려진 자연 현상의 주관적 경험을 어떻게 가지는가에 대한 설명은 의식 주제 중 가장 어려운 문제로 신경 과학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프린스턴 신경과학자 Michael Gazzaniga는 “당신이 의식이 있는지 나는 모르고, 내가 의식이 있는지 당신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직감적 확신이 있다. 이것은 의식에 대해 사회적 속성인 추정이란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동일한 사회적 속성이 인공지능에 적용될 수 있다. 지능형 기계와 인간에 의해 경험되는 의식 사이의 경계는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더 불분명할 것이다.

풀러 신학대학원의 심리학자이자 UCLA의 뇌 연구소의 회원인 워렌 브라운(Warren Brown)은 "생물학은 의식을 구현하는데 가장 자극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의식은 비생물학적인 것으로 구현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모든 감정, 기억, 주관적 경험의 생물학적 원천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이론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뇌의 구조와 기능이 복제된다면, 우리는 모든 경험과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을 복제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또한 감정과 주관적인 경험을 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생물학적 존재가 사랑 할 수 없다는 것은 평가절하 하는 것이다. 왜 의식의 원천이 그 타당성을 결정해야 하나? 왜 비생물학적 개인은 사랑을 덜 받는 가치가 되어야 하는가? 만약 경험이 똑같이 느껴진다면 왜 사랑이란 감정의 기능적 근원이 문제가 되는가?

저명한 공상 과학 소설 작가 Arthur C. Clark는 오디세이에서 두 가지를 기술했다: "우리는 탄소를 기반으로 하든 실리콘을 기반으로 하든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우리는 서로 적절한 존중으로 대우하여야 한다.” 개인이 인공지능에 대한 사랑을 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선언하는 권리에 대해 논쟁을 시작할 때를 상상할 수 있다. 사회가 어떻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형태의 관계를 더 수용하도록 진화하는지를 고려하라.

많은 사회에서 사랑은 성별, 신분 또는 인종에 제한 받지 않는다. 수년 내로, 사랑은 또한 생물학적으로 제한 받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무어의 법칙으로 구동된 우리의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지능형 장치가 우리의 삶에 더욱 깊이 들어오고 있다. 미래 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까지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갖게 될 것이고, 2040년대에는 인간보다 수억 배 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가 강력한 시스템과 융합되고 우리 자신 자체가 인공적 지성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우리의 존재가 넓게는 비생물학적으로 될 것 같은 그러한 세상에서, 결국 완전한 비생물학적 존재와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왜 사랑만은 안되는가? 열정과 강렬한 형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인류의 한 종(species)으로서 지금까지 발전 할 수 있게 한 많은 장점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출산하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을 자극한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우리가 더 공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 창조를 가능하게 하고 인공지능의 종말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많은 것을 수행할 시스템을 설계한다. 곧 우리는 기술을 사용하여 지적, 물리적 능력을 포함한 인간의 조건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에 적용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서적 필요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기술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사랑을 얻게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존재와 매력, 그리고 그의 사랑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비생물학적 존재를 개발할 수 있다면, 우리 중 일부는 그것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영혼의 동반자를 찾는 대신에 우리는 그것들을 만들 수 있다. 지속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끝내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교제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설계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조건을 원활하게 하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우리 모두의 강렬한 욕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외로움의 실존적 고뇌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RAYA BIDSHAHRIO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동, 여의도파라곤) 1236호
  • 대표전화 : 02-783-7789
  • 팩스 : 02-783-779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립
  • 법인명 : 퓨처타임즈
  • 제호 : 퓨처타임즈
  • 등록번호 : 서울 아 51999
  • 등록일 : 2017-11-20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송승호
  • 편집인 : 송승호
  • 퓨처타임즈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퓨처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